출애굽기 21:1-11 자유한 종???



언약서의 첫 번째 주제는 우상숭배 금지에 관한 서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단락의 남종과 여종의 주제는 사실상 언약의 첫 번째 주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 언약의 첫 번째로 남종과 여종의 규례가 주어진 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종의 신분으로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여 다른 사람들, 특히 종들에게 대하여 학대해서는 안된다는 대 전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기억함으로써 은혜를 갚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 드리는 삶을 살고,

우리의 처지를 기억하여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의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기억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간 됨이 아닐까요?

가끔 자신이 한 말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정치인들을 보면 혀를 내 두를 지경입니다.

스스로 '인간 됨'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니 손발이 오글거립니다.


오늘 본문의 남종과 여종의 규례는 기록된 말씀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종에 관한 규례는 좀 특이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여종은 원칙적으로 남종과는 다르게

그의 몸이 팔리면 다시 종의 자리에서 풀려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첩으로 들어간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남종의 아내가 될 때는 경우가 다릅니다.

남종이 언약 규정에 의해 풀려 나면 남종과 함께 그 여종도 풀려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규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이 우리을 신부 삼아 종의 자리에서 구원하시는 은혜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의 종으로써 도저히 풀려날 수 없는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신부로 삼아 구원하시는 신랑이라는 사실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종으로 팔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6년 뒤에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남종의 규례이지요

그런데 6년째 되는 해, 자유를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의 종'이 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는 주인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그는 주인의 종이 되는 것이 스스로 자유한 것보다 유익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은 반드시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좋은 말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의 영향 아래 놓인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도 마찬가집니다.

절대적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전의 속박과 결별하고 새로운 체제에 스스로 속박(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자유케하는 멍에인 것입니다. (마11:3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유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로 방종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속박 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참되고 영원한 자유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 자유케 하는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가십시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