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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후 19일 (약1:2-6)

2.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시련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시험을 기쁘게 여기고

시련을 인내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을 통과 하면 '얻게 될 무엇이 있다'는 확실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까?


부활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힘은 부활입니다.

기독교의 근간은 부활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신앙은 현실이라는 '바람'에 늘 요동치는 바다처럼 정처없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부활이 없어서도 아니고,

부활이 합리적이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지식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은 내가 간파하는 지식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없어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구하라' 하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꾸짖지 않으시고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께 겸손하라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이 없다면

내가 그와 함께 다시 일어날 것을 믿지 못한다면!

시험은 기분 나쁜 것일 뿐이며

시련은 그저 괴로운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 시험을 만나고 시련을 겪습니다.

당신은 어떤 근거로 이 시련과 시험을 이겨내고 있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긍정적의 힘이 아닙니다.

마인드 컨트롤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도 뛰어넘는 '확실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신앙인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지식입니까?

그리스도의 인카네이션, 즉 성육신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과 죽음에서 일으키신 부활의 사건이 우리 지식의 코어입니다.

이 지식이 믿음의 근거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시험을 당하며, 유리하며, 시련에 늘 넘어지며 절망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영생을 믿는 자들은

닥쳐오는 시험이 오히려 나를 굳게 세울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그 지식을 더욱 확고하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


시련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에서 인내하면 할 수록 우리는 부활 영생에 대한 지식이 더욱 확고해지며 온전해 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와 한국 초기 기독교가 확실한 믿음과 그 영향아래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시험과 시련을 통해 그 지식은 더욱 온전해 졌고 그 확실한 지식으로 인하여 다가온 모진 시련과 고통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믿음을 지켜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련과 시험이 그리 모질게 오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눈에 더욱 확실해 보이는, 우리 손에 잡히는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다른 은혜, 다른 복음으로 표현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더욱 심한 믿음의 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때 일 수록, 더욱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을 붙좇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스스로 나태해 지지 않도록 자신을 늘 깨웁시다

즐길 수 있지만 절제합시다.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자발적인 불편을 감수합시다.

일부러 고행 할 필요는 없지만, 이 땅의 편리함 속에서 영적 감수성을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붙은 양동이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무지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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