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11-25 나의 완고함을 버리고...
내용: 이스라엘이 한마음으로 반역을 꾀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두 멸하고 모세를 통해 더크고 강한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그 백성을 위해 다시 중보자에 서서 백성의 죄의 용서를 구한다.
(11-12)
하나님의 편에서 “질병과 탐욕과 죽음이 일상”인 자들을 멸하고, 대신 “믿음과 소망과 영원한 생명이 일상”이 된 모세를 통해 크고 강한 민족을 이루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것이다.
(13-19)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 하는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변호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하심은 마땅하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한마음으로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다.
그것 역시 그분의 성품이다.
모세는 자기를 통해 민족을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그 은혜와 언약의 하나님, 사랑의 속성에 호소를 한다.
출애굽기 32장에 모세의 첫 번째 중보 기도가 나온다.
바로 금송아지 숭배 사건 이후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고 모세를 통해 나라를 만드시겠다는 동일한 말씀을 하실 때에도 모세는 주저 없이 자기 목숨을 제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며 용서를 구한다.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심판을 당신 자신의 몸에 쏟아 버리심으로써 용서하신 것이다.
십자가....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땅한 진노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 안에서 상쇄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지점.....
(20-25)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 하는 기도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
그러나 용서란? 아무 일 없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을 제거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상식’을 훈련할 훈련장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돌리신다.
이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지금의 이스라엘의 이 모습으로는 가나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완고함으로 입증된다.
“22절” 보면 애굽에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도 “10번이나 나를 시험”했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적을 보고도 10번이나 마음을 완고하게 한 자가 누구인가?
바로 왕 아닌가!!
그의 완고함은 결국 그가 가장 의지했던 ‘태양 신’의 심판이 되었고,
그의 완고함은 애굽의 가장 큰 신인 자기 자신(자식)의 죽음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그의 완고함으로 철저히 심판을 받는 이미지로써 하나님은 홍해 바다에 그의 군대를 수장시키는 그림을 그려 주셨다!
그런데 그 10번의 완고함을 이번에는 이 백성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10번...
이것은 완전한 거역이다 !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철저한 심판을 예고한다.
나중에 보겠지만, 가데스 바네아에서 거역하던 광야의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만다. 완고한 바로의 백성이 물속에서 수장 된 것처럼.....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지만, 죄의 대가는 반드시 찾으신다.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은 홀로 갈렙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갈렙은 마음이 달랐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그의 마음속에 다른 이들과 다른 영이 있었다는 뜻이다. 갈렙은 오직 여호와만을 온전히 따르며 신뢰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렙은 ‘에서’의 가문, 그나스 자손으로써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모든 이스라엘 보다 더욱 칭찬받는 자가 된다.
그나스 족속으로써 유다지파에 합류된 것 역시
유다에 의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구속사적인 그림이 아닌가!!
우리야 말로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였지만, 그리스도안에서 가까워 졌을 뿐 아니라, 혈통적 이스라엘 보다 더욱 칭찬받는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달랐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영적 이스라엘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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