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27-38 찬송가 218장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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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대접 받은 대로” 남에게 갚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구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35-38절을 보면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나 악인에게도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는 ‘용서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과 소유를 나누는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율법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망하여 은혜를 주시기 위함인 것처럼..

사랑은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비와 용서를 내게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비를 본으로 삼고 살아가길 기대하십니다.

세상은 “대접받은 대로” 대접합니다. (27-29,31-33)

그래서 원수에게 보복하고, 욕먹으면 욕하고, 맞으면 때리고, 빼앗기면 더 많이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해야 합니다.

원수라도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23:34).

한쪽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고(29),

겉옷을 강탈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폭력과 갈취를 그저 당하고만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때리고 강탈하는 자를 무력화시키라는 말입니다.

무효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

사랑은 모든 무력과 폭력, 강함과 세상의 능력... 이 모두를 무효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에 저항하시고 악인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는 폭력’과 ‘겉옷과 속옷까지 빼앗기는 강탈’을 당하시면서도 주님은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저항하시되, 보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죄를 책망하지만,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주님을 죽이려드는 사망까지 무효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뜨인 돌’이신 예수는 세상의 그 모든 우상들...

힘과 권력을 한 번에 부숴버리셨는데, 그 힘은 세상의 힘이 아닌, 용서하시고 대신 죽어주시는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단2)

사랑은 위협하고 죽이는 모든 권력과 힘을 기각시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은 “받을 대접을 계산하며” 대접합니다.(30,31,34)

자신에게 득이 되거나 적어도 손해가 되지 않을 때, 관계를 맺고 자기 소유를 빌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그의 형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에게 소유를 나눠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웃을 도울 때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또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하십니다. (37)

이 말씀은 그릇된 일을 봐도 방관하라거나 누군가 죄를 저질러도 묵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 내내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드러내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판하고 정죄하더라도 용서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용서를 목적하는 비판”이라면, 비열하고 잔인하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세상의 권력과 힘을 무효 시키신 것처럼...

진리에 서서 저항하고 세상의 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신 방법대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봅시다...

진리 없는 무비판, 무저항도 문제지만,

힘대 힘, 강대 강으로 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뜨인 돌 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뜨인 돌로 살아갈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세상의 우상과 그 모든 권력을 사랑으로 무효 시키고 무너뜨리신 것처럼...

우리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세상을 심판하되

사랑으로 세상의 우상과 힘과 권력을 무력화 시키는 삶을 살아내어

그들의 삶의 빛이 되고 진리로 우리의 이웃을 인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