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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24-10:13

고린도전서 9:24-10:13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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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기

인간의 삶을 '천태만상(千態萬象)', 또는 ‘파란만장(波瀾萬丈)’으로 묘사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을 역사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기에

우리는 누군간의 역사에서 '교훈'을 받으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신자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신앙의 역사성, 성경의 역사를 교훈 삼아 오늘에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단순히 내가 믿고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믿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믿음을 즉, 복음을 세상과 공유하고 나누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운동선수에 비유합니다.

즉 신자는 나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운동하기 위해 구별된 선수처럼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의 엄중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렵다.(27)

이것은 자신의 구원이 취소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한 말입니다. 그만큼 복음을 위한 사역이 엄중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성직자로 분류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소명이 아니라,

믿음을 선물로 받은 모든 신자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경주하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9: 24-27)

경주하는 자의 특징은 ‘절제’입니다.

운동선수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기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음식에서부터 몸 관리, 가족 만남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절제를 합니다.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일에도 그렇게 하는데,

영원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위해 싸우는 우리는 얼마나 절제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라고 할 만큼 자신을 절제했습니다.

(2) 역사에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10: 1-11)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동원해서 그 교훈을 적용합니다.

유대인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다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2-4)

그들의 삶과 생활 전반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거룩하심을 목격했습니다.

홍해를 가로질러 건넜고, 하늘의 만나로 먹이셨으며,

이스라엘을 따르는(following) 반석을 두셔서 계속해서 그 반석으로부터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크신 능력과 은혜로 광야 생활을 이끄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을 즐겼던 것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숭배(출 32:6),

싯딤에서의 음행(민 25장),

주를 시험함(민 21:4-6),

하나님을 원망함(민 14:35-36, 16:1-2)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순종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이 이러한 일들을 기록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11)

즉 본보기!!! 성경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어리석고 약한 우리들을 위해 성경 역사를 그림책처럼 펼치시고,

인간의 어리석음이 반복 되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3) 내가 역사의 본보기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역사들을 거울로 삼아, 교만하여 분쟁하지 말것을 촉구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까요..(잠 16:18) (10:12)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의 자취가 향기롭기 때문에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나의 가족과 가까이 사귀고 있는 나의 이웃은

나를 돋보기 삼아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내가 왜곡되고 비뚤어져 있으면, 세상은 하나님을 올바로 볼 수 없습니다.

성도의 모임이 거룩하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바울의 이 말씀,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염려 하지도 말 것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 있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10:13)

또, 시험 당할 즈음에는 또한 피할 길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역사라는 시간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매 순간은 우연한 일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결과임을 알고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시는....

그래서 실수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은혜와 평강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새바람교회 성도님들 다 되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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