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9-22

내용: 예루살렘 선지자들의 심판을 선언하고,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 9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 10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 하나님은 거짓으로 말하는 선지자들에 대한 심판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선지자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 (9)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대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전하였습니다.(16)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마음의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인 듯 전하였고, 그것으로 돌이켜야 할 죄인들이 말씀앞에서 돌이키게하기는커녕 죄의 자리에서 안주하게 많들었기 때문입니다. (14)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안전”을 약속하였던 것입니다. 그럼 백성들은 잘못이 없습니까? 아니요~!! 유다 백성은 참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막고,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듣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말씀을 따라다녔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은 어쩌면,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자 하는, 유다 백성들의 탐심 때문이아니겠습니까? 그들의 탐심은 선포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서 필터링하여, 수용할 것과 수용하지 않을 것을 자신이 결정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라고 해도, 좀더 내게 좋은 해석이 없을까 하여, ‘글쎄…’를 던지는 시대.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사악’이라 하며, 악행이라 하며,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 텍스트(Test)’에 충실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내가 정한 하나님, 내가 소원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바른 교리와 그 교리로 시대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자 없이 어텋게 길이를 측정할수있습니까 교리를 모르면 성경의 메시지를 결코 알수 없으며 이단과 마귀 유혹의 표적이됩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로서의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가난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손해 볼까봐 꾀를 내는 자들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 땅의 사람들이 사랑하고 목숨거는 가치에 대하여 우숩게 생각하는 자들이기에 현상에 울고 웃고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권력과 힘이 있어 감당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감당 하지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신자의 자질을 회복하십시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뭡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염려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괜하게 미리 염려하여 ‘자구책’을 쓰다가 낭패를 당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에 기록한대로 나를 비춰 보며, 온전한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분별해내고, 신자의 자존감을 회복하여, 죽으면 죽지요! 바벨론으로 끌려가라면 끌려가지요~!!!! 상황 위에서 진짜진짜 신자로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