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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1-11

내용: 할례문제로 교회안에 논쟁이 일어나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파송하였고, 공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 하나님은 차별없이 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의 결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들 가운데 유대교에 있다가 예수를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해 왔던 습관을 따라 관습을 지켰습니다. 스스로 경건에 힘쓴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기 의가 커질 수록,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주장하였습니다. (1,5절)

이것이 교회 안에서 소란을 일으켰고, 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그동안 바르고 경건하게 지내온 사람이 받은 은혜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아온 자들이 받은 선물이 똑같다는 것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을 힘쓰고, 종교적 의무를 다 지키려 해도

결코 지킬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으려 했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까요?

누가 율법의 조문을 다 지킬 수 있었을까요?

공회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런 논쟁이 있던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은혜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고(3절),

조건 없이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다 복음을 받았습니다.

! 우리도 우리의 삶의 배경과 환경을 따라 구분하기를 좋아 합니다.

특별히 나름대로 착하고 의롭게 산 사람일 수록,

교회에서 오래 봉사와 헌신을 한 사람일 수록,

우리의 의가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나 정도는 되야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어떤 일들을 해야 신앙인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이 ‘은혜’를 잃어 버리면,

내 안에 “자기 의”가 자라게 되고,

다시 종의 멍애를 매고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오류에 쉽게 빠져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과 의로움은 은혜의 ‘열매’이지,

선한 행동과 의로움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 하는 성도님들!! 오늘 나의 의로움과 교양과 인격으로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을 인식하시고,

인간적으로 볼 때, 연약한 내 이웃들이지만!

나에게 은혜를 주신 그리스도의 눈으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보며 관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의로움을 주장 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가족에게^^

은혜로 대하면, 은혜의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와 닛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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