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2-23 주가 아니가시면 나도 가지 않겠습니다!




14-15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현재의 장면은 진영 밖 회막에서 하나님과 대면한 모세의 마지막 기도와 탄원이 될 것입니다.


(12-14절)

모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이 여정은 오히려 짐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리라' 약속하실 때만 모세의 역할은 의미가 있는 것이죠

모세는 그 의미를 붙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동행 없이 이 길을 간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백성을 대신하는 자로써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만나주셨던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상기시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야, 모세야" 이름을 친히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모세가 파라오의 영아살해 현장에서도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은총을 입은자라면, 함께 동행해 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의 탄원을 들어주시고 대답해 주십니다.


내가 친히 갈 것이다

너를 쉬게 할 것이다.

이제 모세가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고 수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전 이 부분에서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백성의 방자함을 그저 두실까?

앞으로 이어질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과 불순종으로 인한 광야40년의 방황이 암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의 이름을 아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따로 구별된 장소(회막)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사 여전히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거룩하신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또 하나님으로 충만한 동행을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날마다 사용하십시오!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내가 하겠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줄로 믿습니다.



(15-23절)

모세는 친히 동행하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지만 확증의 표징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동행'하시는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현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자는 살 자가 없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위에 세우시고, 당신의 손바닥을 펴서 모세를 덮어 가리고 지나가시면 그 뒷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손바닥으로 덮으신 것은 인간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은혜였을 것입니다.

마치 시내산 위에 덮힌 빽빽한 구름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수준을 따라 필요한 만큼 필요한 것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체험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 될 수 있는 기록된 말씀을 주심으로써 지금도,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고, 그분의 인격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에 눈을 뜰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