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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1-11 장신구를 떼어내라!




(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한 일로 인해 이스라엘과 더 이상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약속하신 것은 지켜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는 하겠지만,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이 뻣뻣한 교만한 백성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이스라엘을 떠난 것처럼 보입니다.

1절에서 ‘너는 네(You)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모세의 백성이라고 칭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선을 긋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목적을 달성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목적 달성은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목적은 달성했는데 하나님께서 떠난 목적 달성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약속의 땅은 아무 가치나 소용이 없습니다.

함께하심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회개합시다. 겸손합시다.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합시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4-6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몸을 단장하지 않습니다.

근심과 슬픔을 말로만 나타내지 않고 실제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입니다.

이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장신구를 떼어내도록 하십니다.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옛 생활을 청산할 때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습니다(창 35:1-4).

금송아지 사건도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사람들로부터 장신구를 받았는데 결국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기에 하나님은 이 장신구를 떼어 버리도록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장신구는 우상의 일종이지만, 사실 우상 뒤에 숨어있는 자기 숭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 '

'그리고 장신구....'

이 두 가지가 이렇게 연결 되어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목에 금목걸이. 금 사슬에다 몸에 문신을 잔뜩 그려넣은 사람들 보면, 확실히 교만해 보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높은 구두에 몸이 드러나는 짧은 치마, 화려한 목걸이와 귀걸이 등 장신구를 걸치고 길을 활보하는 여성을 보면 쉽게 점근하기 어려울 만큼 도도함이 느껴지는 것이죠


장신구....

하나님은 교만한 백성들에게 장신구를 제거하라고 하는 것은 비단 겉모습이 거슬려서만은 아닙니다. 내면의 교만한 마음, 자기를 숭배하는 우상숭배가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장신구를 제거하고 내면을 겸손하게 겸비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느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단호히 결단하여 떼어내도록 합시다.



(7-11절)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였는데 여호와를 양모 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십니다.

이때 모든 백성이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합니다.


모세는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특별한 회막을 진 밖에 멀리 떠나 만들어 회막 속에서 하나님께 중보기도 합니다.

회막이란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영적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바른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을 만들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새롭게 가지고 회막으로 가까이 나아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장막 문에 서서 모세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경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한 백성에게 진노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고백하며 말하는 채널까지 막지 않으셨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말하기 원하셨고, 그 길을 언제나 하나님이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영원한 '회막'이 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아무리 악독한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과의 사이에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이 생겼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회막이 진 밖에 떨어진 어떤 지점이라는 것을 보면 우리는 구별된 어떤 공간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우리가 일에 더 관심을 두다 보니 세상 적으로 빠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성령을 따라 순종해야 할 우리가 육체의 욕구대로 살 때가 더 많았기에

우리에게도 구별된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이 구별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한편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 위해 성과 속을 구별하는 지혜 또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말씀을 볼 수 있는 구별된 장소가 있습니까? 그러한 장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영성을 위한 성과 속의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비로서 말씀의 빛이 나고, 말씀이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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