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음 단락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18-21절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사역자들의 존재 이유와 사역에 있어 중요 전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참으로 아는 인생은 사역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사역자들을 찾고 그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 됩니다.
그것을 성경은 '경외심'이라고 하는데요.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두려움은 말씀을 '듣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백성들이 19절에서 하는 말의 뉘앙스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매우 애절하게 모세에게 말합니다.
'대언'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으리이다'라는 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경청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은 대언자의 필요와 그가 전하는 말씀에 의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사역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을 때는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들음'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듣지 않았을 때는 그 말씀을 듣기는커녕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론과 모세에게 돌을 들어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성경 역사는 이러한 경향을 반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 속에서 이미 '들음'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존재의 거룩함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진실로 두려우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육과 영을 파멸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항상 말하기를 지혜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분을 아는 것이라고 귀에 따갑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과 그의 이름과 그 분의 말씀이 진실로 두렵게 여기신다면,
나무토막 같은 이 사람조차 하나님의 메신저로써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심령은 내 귀에 좋은 말을 해주는 '유능한' 사역자들을 찾아 지금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선포하는 사람의 유무능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태도에서 귀가 열려진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순종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삶 속에서 죄에 대하여 눈을 감아버릴 때는 적어도 우리는 불신자요 하나님을 거절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앞에 서있는 목회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싶고, 그래서 하나님과 좋은 관계로 나아가기 원하는 마음을 가질 때는 목회자는 의미 있는 '대언'자로 설 수 있지만
하나님보다 삶에 더 관심 있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 있는 사역자는 그들 앞에 있는 여러 우상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멋진 노래와 춤으로 아이들을 홀리는 '아이돌' 인기 스타들처럼 말이지요....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담임 목회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대언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미래의 염려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질병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심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두려움 앞에서 참으로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 보신다면 내 앞의 두려움은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분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 단락은 율법의 서론적인 성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규례는 성전에서의 예배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모여 합법적인 예배를 드리는 모든 처소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23절 "나를 비겨서..." 이 말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예배하는 모든 것을 가증히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4-26절, "토단과 다듬지 않은 돌"로 재단을 쌓으라 한 것, 그리고 "계단"으로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화려한 성전 제사와 그렇지 못한 생활 속에서의 예배의 거룩함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그 곳도 거룩한 곳이기에 자칫 직무 중에 무심코 발생할 수 있는 불경건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 안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단락은 놀랍게도 성전 중심의 유대 전통에 큰 도전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예배 하는 삶은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합법적으로(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건한 예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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