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3:1-13




다양한 주제들이 뒤섞여 있어서 통일된 구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굵직하게 흐르는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훈계를 들어라" 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청자의 말과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유를 사오라"는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라는 대답과 가게에 가서 우유 사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들었습니까? 그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하는가를 통해 그가 잘 들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훈계는 나의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언급해 드렸던 것처럼,

권면, 훈계.... 그 자체가 날카로운 재단 도구가 되기에

권면과 훈계가 내게 양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항상 긍정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혜자는 말합니다! "입을 지키라"고 말합니다.(3)

즉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정리 되지도 않았는데, 자기 감정과 자기 이유와 변명을 쏟아낸다면,그 사람은 미련함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전혀 없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4절에서 '게으름'이라는 주제가 불쑥 튀어나오는지 오래 생각하고 묵상해 봅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아들이 게으름 피울 때는 어버지의 말에 불만을 품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자기 일에 있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있어어 결코 게으른 아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면이 불편하고 수용하기 어려우니 느린 행동으로, 때로는 못들은 척 하며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수용적이지 못하여 주저하는 소극적인 불신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행을 악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권면과 훈계를 즐겨 듣는자가 어찌 게으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분명한 믿음으로 수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마음으로 소원하게 되고

소원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부지런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풍요'는 부지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도록 그 마음을 일으킨 동기에 있습니다.


나는 무엇에 의해 '열정'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나를 열정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열정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나는 무엇에 '순종하고 있는지'...

그 행위의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열정 있는자로 만드는 깊은 동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부유한척을 해도 영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7)

영적으로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매우 강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부지런하게 영적인 일을 도모하는 모습을 통해 그 믿음의 진정성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곧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요, 계명의 가치를 아는 자의 열정입니다. (13)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사모함으로 오늘 나에게 주신 하루를 부지런하게 생명을 일으키는 삶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