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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9:15-24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20.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21.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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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자기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는 자”에게 화를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

“자기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는 자”는 의심에 여지없이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운 계획은 동맹정치인데요, 애굽의 도움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이 빠진, 하나님이 무시된 정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을 버리는 배교의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16절 이하를 보면, 이사야가 묘사하는 것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우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을 ‘토기’ 취급했습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 취급했다는 말입니다.

지혜와 명철을 주신 하나님께 지혜와 명철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말했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이사야는 토기장이 비유를 들어 책망합니다.

토기장이 비유는 성경에서 3번 등장하는데,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행위를 다루는 내용들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로써의 토기장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토기장이가 아닌, 토기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신이었는가?

하나님은 죽은 신, 사람이 만든 신, 아무런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무능한 신에 불과 하였습니다.

다른 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뜻과 계획의 성취를 위해,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주는 정도의 신.....?

이것은 짝사랑과 비슷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느끼게 되는 사랑의 감정....

그런데 그것은 상대방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관계와 무관한 그 감정은 ‘내가 만든’ 감정일 뿐입니다.

사랑의 관계로 형성되지 못하는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짝사랑 하는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은

양방향 소통하는 사랑이고,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실제적인 관계에서 오는 믿음이며,

믿을만한 분을 ‘만났을 때’, 촉발되는 것이 참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그와 같이 믿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수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내가 이용하고 싶을 때만 찾는 존재로만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떠하신 분입니까?

만약,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존재로 여기거나,

우리의 평화를 보장해 주는 정도의 분으로 여기거나,

내가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 도와주면 ‘땡큐’인 하나님으로 여깁니까?

오늘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며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적극적으로

그런 자(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는 자)를 향해 화를 선포하시는 이유는

저들이 유다라는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사람의 불신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과 결부 될 수 있기에 하나님은 공동체 안의 불신에 대하여 ‘화’를 선포하십니다.

(17-21)

이렇게 화를 선포하신 후에, 곧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등판하십니다!!

등판 하셔서

모든 어그러지고 흐트러진 것들을 바로 잡으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한 자들을 ‘무시’하시고,

교만한 자들에게서 눌린자들, 소외되고 무시된 자들을 땅과 함께 회복시키십니다.

땅은 생존에 필요한 것을 풍족하게 공급하게 하시고

못 듣는 사람, 막혔던 귀, 들러붙은 눈....

이런 영적인 무지에서 그들을 깨워 듣고 보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눈이 열릴 뿐 아니라, 18절,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현상과 환경을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면과 배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미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17-19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이들을 통해 희년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처럼 임했다라는 말은 우리가 그 나라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은혜로운 ‘변혁과 역전의 삶’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에 의해 ‘분리’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변혁이 당신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날은 저주와 수치의 날이 아니라,

수치를 명예로 바꾸는 날이요, 불평을 감사로 바뀌는 날이요, 불순종이 기꺼이 순종으로 바뀌는 날입니다.

숨었던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께 드러내고, 입었던 세상의 신을 벗어 버리십시다.

그리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는 나날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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