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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2:1-10

찬송가 280장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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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으로 멸망 직전에 있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니느웨 와 반대 되는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고, 제비에 뽑혀 깊은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물고기 배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배속에서 올리는 기도의 전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물고기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유쾌한 상황과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해초오 짠물, 그리고 위액으로 뒤범벅 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도 감사의 기도, 서원의 기도를 올립니다.

물고기 배속은 깊은 죽음의 바다 한가운데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의 은혜가 아니었고, 오색찬란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에 흐르는 Grace of GOD, 하나님의 은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2절, “고난으로 말미암아” 요나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기의 하나님을 불러 아뢰었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아니었으면 자기 자신의 뜻에 함몰되어 하나님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완고한 인생이

고난을 당하자 진실로 의뢰할 한 분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은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나는 진실로 이것이 은혜라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다른 은혜를 찾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언급하기도 했죠.

8절.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요나는 자기에게 닥친 고난이 은혜임을 알고 감사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난이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3-5절에서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깊음” - “큰 물” - 주의 성전을 바라봄 - “큰 물” - “깊음”

인클로지오 기법이라는 문장의 형식을 빌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한 요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를 향해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는 것뿐이라는 것이죠...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위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고, 기대할 수도 없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봄이 은혜요, 생명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 한 가운데서 ‘물고기 배속에서 보호’ 받고 있는 이 모습 자체가 구원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이하에서 요나의 기도는 확실한 은혜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미 그 구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기도하며 서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6절 이하....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고, 땅의 빗장이 나를 막았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나를 건지셨다

이 건지셨다는 동사는 히필 미완료 계속적 용법이라고 하는데,

이 의미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건지셨지만, 계속 반복적으로 건지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지금 배속에서 산소가 부족한 그 상황에서 이런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와 그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7절...

우리의 영혼이 피곤하다.. 이 표현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겪는 인생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때, 요나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자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소통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기도는 나의 뜻을 관철하는 '자기 주장의 자리'가 아닙니다.

'기도 응답'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말씀 가운데, 우리가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씀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 사람답게 참된 의미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니느웨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가 결론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뜻을 전혀 굽히지 않고 죽음도 불사하며 하나님을 거역하여 반대의 길을 걸었던 요나...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해결하지 못할 고난을 경험해 보니까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직 내 인생, 내 목숨, 내 삶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요나는 고난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차단된 이 좁은 현실에서 오히려 참 자유, 참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죽이시고 살리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니, 하나님 원하는 대로 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라고 자신을 하나님께 던지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 참된 제사를 드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우리 목숨을, 우리 인생을,

왜 만드셨으며 왜 아직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계실까요?

더군다나 죄 많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이셨다면,

지금 당장 그 좋은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데려가시지

왜 이 땅에서 고통을 겪게 하시고, 고난을 경험하게 하십니까?

그것은 요나가 했던 고백처럼...

‘내 생명은 하나님이 것이고,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내 삶은 주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을 우리 모두에게 끌어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통해 이러 고백을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러한 삶은 웃음도 없고, 행복도 없고, 즐거움도 없이 눈물만 있는 삶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고난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다면 이 세상이 주는 웃음과 행복과 즐거움 따위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곧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감사와 평안이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걸어야할 복된 생명의 길이요, 부활의 길입니다. 성도에게 허락된 참된 부요함입니다.

이 생명의 길과 부활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은!!

고난이 더 이상 그를 고통가운데 묶어둘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과 생명의 빛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 세상의 어두움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소유한 요나를 물고기가 더 이상 자신의 어두운 뱃속에 잡아두지 못하고 토하여 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누리는 사람은 더 이상 고통이 그를 잡아 둘수 없고, 사망이 그 삶 위에 왕노릇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이 매일의 삶속에서 누리고 경험 되어지시길 소원합니다.

혹시 심각한 고난으로 말을 이을 수가 없고, 앞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들게 되어 졌다면....

더욱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것이며,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주님 때문임을 영혼 깊숙한 곳에서 고백하는 오늘 본문의 요나가 되기를 소망합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영적인 특권에 무감각한 이 세상, 이 시대에,

어둠 속에서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당당히 생명의 빛을 토해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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