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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1-16




이 편지는 바울이 감옥에 투옥중에 만난 오네시모에 대해서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동안 오네시모를 만나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는 예수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출신을 보니 골로새 지역 가정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경제적인 손해를 끼치고 도망온 신세였습니다.

분명한 회심의 흔적을 갖게 된 오네시모를, 바울은 그와 함께 곁에 두고 사역하고 싶었지만 그가 빌레몬의 노예임을 알았기에 주인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덕을 세우기 위해 바울은 먼저 자신의 기대와 권면을 담은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1-2절을 보면 수신자는 빌레몬과 압비아와 아킵보, 그리고 빌레몬 교회로써 빌레몬은 골로새 지역의 가정교회 사역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나이도 있고 재력도 어느정도 있어 교회에 매우 유익한 조력자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을 편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서의 근거는....

먼저 빌레몬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의 간청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용서하고 공동체로 받을 때 필요한 덕목을 이 편지에서 바울이 제시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으로 무작정 용서한다든지,

지도자의 권위로 무조건 용서하라 하든지,

또는 지도자의 필요를 따라 아무나 사람을 끌어들인다든지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1-7절)

먼저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향한 감사를 기록합니다.

빌레몬이 교회에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빌레몬은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함께 공유한 사람입니다.

사도는 영원한 교회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을 칭찬하면서 그가 교회에서 어떤 믿음으로, 어떤 사랑으로 공동체에 기쁨과 위로를 주었는지를 상기하고 있는 것니다.


(8-16절)

두번째, 사도바울은 오네시모를 이야기 할 때,

그는 이전에 빌레몬에게 큰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언급합니다. 예전의 그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자였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 유익이 되고 뿐 아니라,

바울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는 심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네시모를 받아주었고, 바울 자신도 받아 주었으니, 이제 빌레몬의 차례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14절, 사도는 오네시모의 승낙을 기다렸고,

오직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자유 선언 없이는 함부로 그를 곁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젠틀'함이 아닌가!!!!



한때, 무례한 기독교(리처드 마우.IVP)라는 책을 본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가치관들이 교차하고,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거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 분열된 시대에,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강압적이고 무례한 태도로 일관하는 신자들을 지적하는 책이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정당화되기도 하였고, 심지어 믿음의 증거로까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 리처드 마우는 이런 "무례함"이

잘못된 하나님 이해와 인간 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역설하고,

신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교양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신념과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목으로 빌레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의 관습을 무시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회의 관습과 사회 공감대를 의식하면서 빌레몬의 믿음과 신앙에 호소하고 간청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의 신앙에 호소하고

오네시모의 변화를 변호하고

하나님과 교회의 유익을 대변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레몬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는 하나님의 섭리로 운행되는 하나님의 통치 현장이 아닙니까?

사회를 부정하는 것은 사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는 사회를 보호해야 합니다.

사회가 형성한 삶의 방식을 깊히 이해하여 공감하며 삶의 자리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가치 충돌가운데 들어가

사도 바울이 했던 것처럼 "다리를 놓아주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임된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세상의 "트러블 메이커"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빌레몬으로 부름 받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야 할 이웃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참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자존심, 옳고 그름을 내려 놓고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주는 주님같은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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