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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후 33일 (계3:14-22) 라오디게아 교회

14. 라오디게아 교회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책망으로 경고를 받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가 미지근한 것을 책망합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

상업이 발달하고 큰 도시로 발돋움 한 곳이어서 사회적인 관계와 지위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뚜렷이 나타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주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라오디게아의 헬라어는 ‘백성의 공의’, ‘백성의 옳은 판단’을 뜻합니다. 즉 주권이 백성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구가 많은 상업도시로서 일찍부터 금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성장하는 교회를 백성의 주권 문화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백성이 통치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라오디아교회는 이러한 사람들 간의 체면과 갈등 속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도 돌이키지도 못하는 미지근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라고 합니다. 얼굴에 가면을 벗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께 나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의 약함과 무지함이 문제가 아니라, 솔직하지 못한 우리 내면의 위선이 문제라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도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그들이 부요한 삶에 자고하여 거드름 피우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의 판단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면 사람들에게도 꼴불견이 될 뿐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도 역겨운 것이라 토해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전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주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돌이키면 주님과 더불어 먹과 마시는 관계가 되겠지만, 돌이키지 않으면 역겨움에 견지지 못하시고 토해 내시리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매순간 자기 자신에 빠져 사는 자들을 향해 문을 두드리십니다.

나를 바라보면 참된 너를 볼 수 있고, 내 안에서 행복을 알게 될거야...

“그러므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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