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후 25일 (히 10:23-29)


23.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쉬운성경

23.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니, 우리가 고백한 소망을 굳게 붙듭시다.

24. 서로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며 선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25.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교회의 모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함께 만나며 서로를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26.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 후에도 일부러 계속 죄를 짓는다면, 그 죄를 씻을 제사는 없습니다.

27. 거기에는 오직 심판을 기다리는 두려움과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자들을 태워 없앨 크고 무서운 불만 있을 뿐입니다.

28. 모세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어긴 사람들도, 두세 명의 증인이 있으면, 사형을 받았습니다.

29.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며 은혜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더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희망과 소망을 구별해서 씁니다

사실 사전적으로는 두 단어가 동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은 이 단어(헬,엘피스)를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산 동아에서 만든 『새국어사전』은 ‘희망’을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으로, 그리고 ‘소망’을 “바람, 바라는 바, 소원, 희망”으로, 의미상 두 단어가 같은 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의미가 같은 말이라면 왜 구지 개역성경은 ‘소망’이라는 말을 고집할까요?


사실 ‘희망’은 아직 현존하지 않지만 미래에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희망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희망과는 구별 되어야 했습니다.


희망이 '알 수 없는 중'에 사람이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라면,

소망는 '이미 믿음으로 아는 것'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소망'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지 않으면 그것을 소망이 아닌, 세속적 '희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소망은 곧 믿음이기도 합니다.


나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는 희망입니까?


또한 약속을 근거로 하는 소망을 붙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모여 우리가 고백한 소망을 굳게 해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보아 서로에게 선한 행동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의 교제와 만남은 믿음과 약속을 바라보는 소망을 더욱 굳게 붙잡게 하는 힘이 됩니다.


혼자 있었을 때는 믿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함께 있으므로 견딜 수 있습니다.

언택트 시대, 우리는 더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장소는 상관없습니다.

인터넷상이든 문자나 이메일 속이든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는 곳에서 존재가 담긴 성도들이 모여 믿음을 나누며 소망을 굳게 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소망'을 잃어 버리면, 그 소망의 자리 대신, 세상의 희망으로, 땅의 소망으로 이 자리를 자신의 삶으로 가득 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별개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기 보다는 이 땅의 것을 희망하면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고, 반대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사도는 무서운 말씀을 던집니다.


율법에 순종하지 않은 자를 합법적으로 벌할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며 은혜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지식입닏.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하고 그것을 소망하시는 저와 여려분 되시길 바라고, 도 그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