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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1-12 죽음이 상식인 우리들을 위해....

내용: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으로 보고했던 정탐꾼들의 말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들의 말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여호수아과 갈렙의 믿음의 고백과 도전도 소용이 없다. 그들을 돌로 치려는 순간 여호와의 영광이 회중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구원과 심판이다.

(1-4)

온 회중들은 믿음으로 선포하는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들이 알아듣는 말은 불신의 말이었고,

불신의 마음은 불신의 소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불신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그들이 믿지 못하는 가운데 온종일 ‘통성기도’를 드리고, 밤새도록 ‘철야기도’를 드렸지만 그 기도의 결과는 다시 애굽의 풍요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음을, 그들이 마음에서 진실로 섬기고 있는 우상 바알세불을 섬기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였다.

이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한다’.

이 말은 단순히 원망하는 것을 넘어 네가 책임지라는 강한 압박이다.

더 나아가,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여호와를 향한 원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였는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들 앞에서 행하신 애굽의 심판, 광야 여정 내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불평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들 곁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의 우상 숭배적 도발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5-9)

이런 자들 앞에서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여호와 앞에서 엎드리는 수밖에...

그분의 용서와 처분을 바라는 수밖에 무엇이 있으랴!

백성들의 위협이 무서워서 엎드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두려웠다.

전에 고라 일당이 반역을 했을 때도 모세는 엎드렸었다..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려고 엎드린 모세...

이미 세속을 따라가는 우상 숭배자들 앞에 목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옷을 찢고 변호해 봐야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 즉 복음이라고 말을 해도,

예수가 우리의 복이라고 말을 해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이 복이라고 말을 해도...

애굽을 향한 ‘향수병’에 걸린 자들을 돌이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애굽에서의 삶을 자기들의 ‘상식’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차였는데,

“잘됐다! 차라리(2,3절, 히브리어 ‘루’) 이참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우리를 곤란한 지경으로 몰고 온 저들은 돌에 쳐 죽이자~!!!”

애굽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버린 이스라엘,

경쟁과 포악과 압제, 그리고 온갖 질병과 다툼과 죽음이 ‘상식’이 되버린 이스라엘!

한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셔야 할까?

‘믿음’이 삶을 살 때 그들의 ‘사고방식’이 되게 하고,

죽음이 아니라, 영생이 성도의 ‘상식’이 되게 하고

하나님과의 동행이 ‘일상’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40년이라는 광야 여정을 준비하신 것이다.

오늘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이 사건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40년의 광야 여정이 왜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오늘 이 글을 읽는 성도들에게 이해시켜 주시기 위해 준비된 ‘엑티비티’ 교재인 샘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닐 때가 훨씬 많다.

영생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아니라,

질병에 걸릴까, 죽을까 걱정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며 상식이다.

우리의 삶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삶은 광야다

광야에서 무슨 선한 일이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 말고....

경쟁과 고통과 죽음이 일상인 자들에게

구원과 부활과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가 일상이 되고 상식이 되도록 가르쳐 주시려고

세계와 역사, 시간과 공간에 우리를 두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 광야에서 지리멸렬한 삶을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삶이며, 그러한 삶속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영원한 것을 갈망하며, 참된 행복과 참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우리가 죽음이 두렵고, 사는 것이 무섭고,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통성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있다면 주의하시라! ‘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눈물이요 외침일수 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눈물 외에 흘리는 눈물은 모두 탐심의 눈물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10-12)

하나님은 그런 탐욕의 눈물을 흘리며

원망하며, 남을 탓하며, 화살을 남에게 돌리며

하나님께 울고불고 하는 자들에게 오셔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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