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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38-42 이웃 사랑(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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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이야기 뒤에 의도적으로 오늘 본문을 배치합니다.

시간이나 장소적으로 거리가 있는 두 이야기 사건을 병렬 배열한 것은 주제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교훈은 두가지에서 살펴 보려고 합니다.

ⓐ 마르다의 이웃이 누구인가이며

ⓑ 전통적인 관점입니다.


먼저 이 이야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사장, 레위인...

그들의 직무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신적 직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기들의 '직무'의 수행을 위해 환란을 당한 자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었다면 환란 당한 자 앞에서 그 무엇보다도 환란 당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초청하여 대접하는 마르다의 일은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하게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 듣고 있는 동생이 미워진 것입니다.

손대접 하기에 바쁜 마르다는 자신의 '일'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적용하고 해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르다와 또 마르다처럼 살아갈 신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행동하셨습니다.


먼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습니다. (39)

여기서 '앉다'는 (*과거, 수동디포, 주격, 여성,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디포 동사는 수동이지만 능동으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수동적인 명령에 능동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리아는 예수님이 앉으라는 명령에 능동적으로 앉았다는 말입니다.


더우기 '발치에 앉다'는 말은 제자가 되다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남자들의 무리속에 작은 한 여인을 제자의 반열에 앉아 여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받는다는 것은 마리아로서도 부담스러운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제자들 무리속에 마리아를 앉히셨고, 마리아는 말씀을 듣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앉히셨다'는 또 다른 근거는

마르다가 예수님을 책망하듯하는 하는 말에서 예수님이 그녀를 앉히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40)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마리아를 불러내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앉으라 하셨기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마리아를 따로 앉히셨을까요?

전하실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좋고 중요한 일이지만


메시지의 첫번째는

마리아가 네 동생이며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교훈은

하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1)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


부엌에서 정신없이 이것 저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만 상상해도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주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일로 바쁘고 고되고 곤고한 상황을 아십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고 그를 높이는 일을 기뻐합니다.

그 일에 분주한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신앙이 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게 받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주님은 주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주는 것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주시는 것에 대가를 이야기하고 지불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주시는 분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경우에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상식'입니다.


주는 것... 감사로 받는 것이 주는 자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겠지만

그것으로 하나님께 얼마나 보탬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리려고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


이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받아야 진정 줄 수 있고,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순서를 뒤집지 마십시오~

뒤집는 순간 '자기 의'가 됩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42)


마리아는 예수님께 '받는 것'을 택했고, 예수님은 받는 것을 '좋은 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는 '받는' 종교입니다.

신에게 주어 달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드림'은... '헌신'은...

진정 하나님께 받은 자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거져 주시는 은혜를 듣고, 감사로 살기로 약속합시다


샬롬~!!!




* 디포넌트(deponentia) 동사 : 혼동태(混動態) 라고도 부르며, 어원은 라틴어 deponere (버리다) 에서 유래되었다. 내부에 갖고 있는 사연은 중간태와 수동태이지만 의미는 능동적이다. 즉, 수동적인 의미를 버리고 능동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 중.수디포(N) : 자신을 위해 타의에 의해 보내짐을 받은 능동적인 행동(능동적).

- 중.수동태(E) : 자신을 위해 행동을 타의에 의해 보내짐을 받는 상태(수동적).

- 중간 디포(D) : 자신을 위한 능동적인 행동.

- 수동 디포(O) : 타의에 의한 능동적인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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