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비유는 관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쉬운 언어입니다.
집단으로 돌보는 양의 우리 안에는 여러 양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목자가 자기 양을 부르는 독특한 부름에 그 목자의 양들은 알아듣고 우리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와의 관계 밖에 있는 양들에게는 알 수 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성령께서 눈과 귀를 열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옛사람이 죽인다는 개념은 내가 나의 옛 습관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올바른 지식이 경험되면 그 지식이 그 사람의 체질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것에 멈춰, 스스로 만족하는 신앙은 절대로 옛사람의 습관을 버릴 수 없고, 결코 체질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며,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그의 음성(말씀)을 들으며, 그 음성을 따라 행동(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의 삶이 결국 그 사람의 체질을 바꾸어 옛사람으로 살 수 없게 하는 것이죠.
오늘날 성도들이 ‘세속적인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힘써 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 안에 힘써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관계 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바꾸어 주시며, 거룩한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자기 힘으로 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 경험으로 남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말씀을 기대하시고 쉬지 않고 ‘의심’ 하십시오!!
의심은 ‘불신’이 아닙니다.
의심은 오히려 ‘믿음’입니다.
의심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맹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맹신이 바로 불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를 ‘힘써’ 아십시다.
그것은 의심을 통과하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믿음입니다. 말씀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날을 바라며 축복합니다.